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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등백석산방(蒼藤白石山房)

안동권씨 부호장공파 일원정(安東權氏 副戶長公派 一源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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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명 창등백석산방(蒼藤白石山房)
  • 글자체 행서(行書)
  • 크기 49.0x167.5x4.2
  • 건물명 창등백석산방(蒼藤白石山房)
  • 공간명 안동권씨 부호장공파 일원정(安東權氏 副戶長公派 一源亭)
  • 서예가
  • 위치정보 안동시 태화동 어개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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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등백석산방(蒼藤白石山房)

창등백석산방(蒼藤白石山房)


창등백석산방(蒼藤白石山房)은 안동권씨(安東權氏) 부호장공(副戶長公) 권시중(權時中)의 후손들이 친목 도모를 위해 경상북도 안동시 태화동 어개골에 건립한 일원정(一源亭) 내부에 걸려 있는 편액이다. ‘창등백석산방’은 푸른 등나무가 우거지고 흰 바위가 곁에 있는 집이라는 뜻으로, 은자가 사는 곳을 지칭한다. ‘일원’은 만 가지 다른 것도 하나의 근본에서 생겨난다는 뜻이다. 『논어』, 「이인里仁」 편에 공자가 일찍이 증자에게 이르기를 “삼아, 우리 도는 한 이치로써 오만 일을 관철시키는 것이다. [參乎 吾道一以貫之]”라고 한 데 대하여, 증자가 말하기를 “선생님의 도는 충과 서뿐이니라. [夫子之道 忠恕而已矣]”라고 하였는데, 주자의 『주자어류朱子語類』에 의하면 충서(忠恕)를 논함에 있어 서(恕)가 충(忠)에서 분파(分派)되는 것을 가지고 말하기를 “만 가지가 한 근본이 되는 것과 한 근본이 만 가지로 다르게 되는 것이 마치 한 근원의 물이 흘러 나가서 만 갈래의 지류가 되고, 한 뿌리의 나무가 나서 허다한 지엽이 나오게 되는 것과 같다. [萬殊之所以一本 一本之所以萬殊 如一源之水流出爲萬派 一根之木生爲許多枝葉]”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편액의 글씨는 회산(晦山) 박기돈(朴基敦, 1873~1948)이 쓴 행서체이다.

작가의 개성이 돋보이는 글씨다. 붓 끝의 뾰족한 부분이 드러나지 않게 했다. 시작은 거슬러 감추고 마침은 거두어 숨겼다. 필획은 후덕하고 골기 넘친다. 복잡한 글자는 단순화 하고 획이 많으면 획의 길이를 짧게 하여 먹의 량을 줄인 화면 운용이 멋스럽다. 붓을 뚝 뚝 끊어 긋고 무심히 멈추었다. 개성 있는 하나의 형식이다. 어떤 글씨를 쓴다 하더라도 이런 형식을 취하는 그런 글씨다. 그 글씨로 산장 편액을 썼다. 그런 덕분인지 산장에 대한 설명을 세세히 하지 않더라도 많은 이야기가 있는 듯하다. 푸른 등나무가 우거지고 그 사이로 흰 바위가 드러나 있는 산장의 멋진 풍광이 말이 없는데도 더 다가온다.

(서예가 恒白 박덕준)

안동권씨 부호장공파 일원정(安東權氏 副戶長公派 一源亭) 소개


권시중(權時中)은 안동권씨 9대 권백시(權伯時)의 둘째아들로 부호장공파의 파조(派祖)이다. 『안동권씨대동세보』에 “정조 18년(1794)의 『후갑인보後甲寅譜』 별보(別譜)에서 입록(入錄)되었다. 당시 그 외손 『선성김씨세보』에 실린 홍무(洪武) 경오년(1390)의 장적(帳籍)에 ‘권서정(權瑞正)은 초명(初名)이 백시(伯時)이고, 그 아들은 시중(時中), 그 아들은 윤화(允和), 그 아들은 만기(萬紀)’라고 되어 있고, 죽유(竹牖) 오운(吳澐)의 『가승家乘』에 월성인 손보(孫甫)의 배위(配位) 권씨(權氏)를 일컬어 ‘부(父)는 신행(愼行), 조(祖)는 용화(用和), 증조(曾祖)는 시중(時中)이다’라고 하였고, 선성(宣城) 김여련(金汝鍊)의 『근파록根派錄』에서 용화(用和)를 윤화(允和)의 아우로 적고 있는 것이 발견되어 세차(世次)를 믿게 되었다. 1205년(희종1)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 친필간찰유묵이 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안동권씨는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족보들 중 가장 오래된 『성화보成化譜』를 간행하였는데, 이는 안동권씨의 자랑이자 우리 민족의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서거정(徐居正)이 지은 『성화보』의 서문에서는 안동권씨의 초기 역사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태사(太師) 행(幸)이 인행(仁行)을 낳으니 벼슬이 낭중(郞中)에 이르렀고, 인행이 책(冊)을 낳았는데 책이 스스로 본읍(本邑)의 향리가 되었다. 권씨는 책이 향리로 된 후로부터 7대가 미약하여 떨치지 못하다가 수평(守平·樞密公)에 이르러 부흥하고 자손이 미덕을 계승하여 문정공(文正公·菊齋)에 이르러서 비로소 크게 현달하였으며, 수홍(守洪·僕射公)의 후손 문탄공(文坦公·一齋)이 또다시 현달하여 권씨가 드디어 2대족으로 나뉘어진다.”라고 하였다. 이로 볼 때 3대 권책(權冊)의 시기로부터 10대 때까지 안동권씨는 안동에 세거하며 대대로 향리직을 세습하여 왔음을 알 수 있다.

향리로 정착한 안동권씨는 10대에 이르면 15파로 나누어지며 향리직에서 벗어나 중앙 관직에 진출하는 사람들을 배출하였다. 안동권씨 15개 파는 복잡한 양상을 띠므로 명확하게 정리하여 내기가 어렵다. 그러나 『보감寶鑑』에 보이는 「안동권씨 10세 15파 세계도」에 의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9대 권백시(權伯時)의 장자 권수중(權守中)이 종파(宗派)를 형성한다. 9대 권백시의 차자 권시중(權時中)이 부호장공파(副戶長公派)를 형성한다. 9대 권백시의 아우인 권중시(權仲時)의 장자 권수평(權守平)이 추밀공파(樞密公派)를 형성한다. 9대 권백시의 아우인 권중시(權仲時)의 차자 권수홍(權守洪)이 복야공파(僕射公派)를 형성한다. 9대 권백시의 둘째 아우인 권취의(權就宜)의 아들 권태달(權棣達)이 동정공파(同正公派)를 형성한다. 9대 권백시의 셋째 아우인 권통(權通)의 장자 권지정(權至正)이 좌윤공파(佐尹公派)를 형성한다. 9대 권백시의 넷째 아우인 권통의 차자 권영정(權英正)이 별장공파(別將公派)를 형성한다. 9대 권백시의 다섯째 아우인 권취정(權就正)의 아들 권통의(權通義)가 부정공파(副正公派)를 형성한다. 9대 권백시의 여섯째 아우 권융(權融)의 아들 권인가(權仁可)가 시중공파(侍中公派)를 형성한다. 3대 권책(權冊)의 둘째 아들인 권광한(權光漢)의 장자 권굉옥(權宏玉)의 후손이 10대 권숙원(權叔元)에 이르러 중윤공파(中允公派)를 형성한다. 3대 권책의 둘째 아들인 권광한의 차자 권굉진(權宏眞)의 후손이 10대 권사발(權思拔)에 이르러 군기감공파(軍器監公派)를 형성한다. 3대 권책의 셋째 아들인 권겸한(權謙漢)의 후손이 10대 권대의(權大宜)에 이르러 광석파(廣石派)를 형성한다. 3대 권책의 셋째 아들인 권겸한의 후손이며 8대 권입평(權立平)의 둘째 아들 권의정(權宜正)의 아들 권추(權樞)가 호장공파(戶長公派)를 형성한다. 2대 권인행(權仁幸)의 둘째 아들 권륜(權綸)의 후손이 10대 권척(權倜)에 이르러 검교공파(檢校公派)를 형성한다. 7대 권렴(權廉)의 이름을 알 수 없는 아들의 후손이 10대 권형윤(權衡允)에 이르러 급사중공파(給事中公派)를 형성한다.

부호장공의 21대손인 권태연(權台淵)의 「일원정팔경一源亭八景」 시가 있어 그 대상만 소개하기로 한다. 제1경은 나산필봉(蘿山筆峯), 제2경은 용사모종(龍寺暮鍾), 제3경은 낙수홍교(洛水虹橋), 제4경은 계암효월(溪巖曉月), 제5경은 서지반조(西池返照), 제6경은 선대원수(仙臺園樹), 제7경은 태화청람(太華晴嵐), 제8경은 무협귀운(巫峽歸雲)이다.

일원정의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집으로 가운데 마루를 중심으로 좌우에 방을 꾸며 놓았다. 정자의 처마 아래에는 당호인 일원정을 비롯하여 왼쪽에는 낙서재 편액이 걸려 있고, 오른쪽에는 화산재 편액이 걸려 있다. 낙서(洛西)는 일원정이 반변천이 굽어 돌아 흘러가는 안쪽인 어개골에 위치해 있어 낙동강의 서쪽이 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화산(華山)은 정자 동쪽에 있는 산이 태화산(太華山)이기 때문에 이름 붙은 것으로 보인다. 또 내부에는 9개의 편액이 걸려 있는데, 동농(東農) 김가진(金嘉鎭)이 쓴 만수헌(晩修軒), 청나라 옹방강(翁方綱)의 글씨인 항괴불여(恒愧不如), 해강(海岡) 김규진(金圭鎭)이 쓴 노송운영(老松雲影), 완당(阮堂) 김정희(金正喜)가 쓴 백세청풍(百世淸風), 시남(詩南) 민병석(閔丙奭)이 쓴 태화야벽(太華夜碧), 성당(惺堂) 김돈희(金敦熙)가 쓴 앵란초우(櫻欄蕉雨)와 옥색금성(玉色金聲), 운송소(雲松巢), 그리고 창등백석산방이다.

참고문헌
  • 『논어』.
  • 『주자어류』.
  • 『안동권씨대동세보』.
  • 안동권씨부호장공파종회, 『일원정一源亭』, 2009.
  • 안동민속박물관, 『안동의 현판』Ⅰ, Ⅱ, 2009.
  • 한국국학진흥원, 『한국의 편액』 Ⅱ, 2015.